양파 값이 폭락하여 단돈 10원만으로도 다섯 바가지를 살 수 있던 어느 해 가을, 지금의 베스트셀러 작가 L은 물에 담가 매운 기를 뺀 양파로 끼니를 대신했습니다. 눈만 감으면 쌀밥에 꽁치 반찬이 어른거렸습니다.
어느날 L은 대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독서 의욕 고취" 포스터 모집 광고를 보았습니다. 상금은 1등이 5천원, 2등이 3천원, 3등이 천원으로 꽤 큰돈이었습니다. L은 우윳빛 용액이 담겨 있는 유리컵 속에 책 한 권이 펼쳐진 채로 용해된 것을 살이 포동포동 오른 아이가 빨대로 그 용액을 빨아먹고 있는 포스터로 1등에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L에게 상금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술로 탕진할 것을 눈치챈 학장님이 미술도구 한 보따리만 건넸습니다. 학장님은 오래전부터 그림에 몰두하는 L을 눈여겨 보았고 그런 그가 1등을 하자 미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포상은 달랐습니다. 학장님은 L을 따로 불러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의 호주머니에 무언가를 찔러 넣어 주었습니다.
"내가 한 가지를 빠뜨린게 있어서 불렀지. 이건 학장이 L한테만 따로 주는 선물이니 미술실에 가서 아무도 보지 않을때 슬그머니 꺼내 보는게 좋을거야."
푸짐한 그림도구 때문에 배고픔도 잊은 그가 주머니에서 발견한 것은 5천원 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남에게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는 액수도 중요하지만 주는 방법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갑 속의 쪽지 한장》오정순, 세손